친한 친구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는 말이요. 어떤 친구는 이 한 문장 안에 저의 오만함이 숨어 있다고도 말을 하구요. 다른 친구는 너무 슬프다고도 말을 하지요. 또 다른 분은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을 한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꾸중을 하기도 하셨어요. 이런 말을 듣고 나서는 '나는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라는 이 문장을 입에 담지 않아요. 게다가 만약 제가 지금 죽어 버리면 저를 사랑하는 분 혼자 쓸쓸히 남게 될 터이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은 그만큼 세상에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의미였어요. 하지만 욕심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하고 재미 없을까요. 아니, 재미 없던가요.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욕심이 있다고 합니다. 식욕, 수면욕, 성욕이 그것이지요. 거기에 더해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물질에 대한 욕심도 있지요. 명예욕이나 외모에 대한 욕심, 인정 받고 싶은 욕망도 추가해야 하겠구요. 만으로 27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을 살아온 저 역시 이러한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 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욕심의 끝은 또 얼마나 허망한 것이던가요. 예쁜 옷을 한 벌 구입하면 더 예쁜 옷을 사고 싶고. 맛있는 음식 한 점 먹고 나면 또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지고. 잠을 자고 나면 조금 더 잠을 청하고 싶어지고 말이에요. 결국 인간의 기본 욕망은 욕망을 부르고 그 끝은 그다지 유쾌하게 남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직장을 갖고 난 다음 사들인 옷들 때문에 아가리가 터질 듯해진 옷장. 음식을 마구마구 먹어버려서 휘, 돌아가기만 하는 체중계. 이것도 읽고 싶고, 저것도 읽고 싶어서 사들인 책들. 결국 남은 것은 몇 푼 남지 않은 통장과 후회뿐이네요.
욕심을 부리지 말자니 삶의 재미가 없어지고, 그렇다고 기존처럼 물욕을 부리자니 허해지는 마음. 결국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살고, 그 행복은 재미에서 비롯되니, 재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중도를 지켜야 하겠지요. 물욕, 그것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끄럽지만, 서른 즈음에서야 말이지요.
헌데,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과하지 않은 것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은 대개 돈, 음식, 명예 따위가 아닌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되겠죠.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그리하여 살면서 끝없는 욕심 한 줄기 내려보고자 하는 게 있으니 다름 아닌 '사랑'과 '꾸준함'에 대한 욕심이 그것입니다. 꾸준하게,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더라도. 명예를 얻지 못하더라도. 배가 부르지 않더라도. 사랑과 꾸준함, 이 두 가지를 껴안고 다시 살아보려 합니다.
네, 이 글은 앞으로 오후 10시부터 11시 즈음에는 무조건 포스팅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쓴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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